2000년 작고 이름 없는 발행물로 시작한 에포크타임스는 현재 미국 현지에서 유료 구독자수 4위 언론으로 성장했습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독자와 단단한 끈을 구축하는 ‘구독 부서’를 총괄하는 책임자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미국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졌지만 우리 매체 설립 초기 모습과 정신이 잘 담겨 있어 전해드립니다.

제 이름은 커크 왕입니다. 에포크타임스 구독 부서 책임자로서 독자 여러분이 우리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뒤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미국으로 향하다
저는 공산주의 중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천 개의 창으로 적을 찌르라’는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곳이었죠. 우리가 겪는 문제는 모두 ‘미국 제국주의의 악랄함’ 때문이었습니다. 자유는 없고 세뇌와 폭정만 있었습니다.
서로 간에도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제한된 자원을 두고 투쟁했고, 계속된 정치 운동은 착한 사람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도태시켜 가장 교활한 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1989년 민주주의를 요구한 학생들이 대량으로 학살된 사건을 겪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톈안먼 사태로 서방사회가 중국공산당에 압력을 가하면서 독재가 느슨해졌을 때 중국을 떠났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다
처음 미국에 온 이유는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되갚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죠. 1993년 미국에 온 후 저는 석사 학위 2개를 취득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업했습니다.
1997년, 저와 제 아내는 첫 집을 마련했습니다. 계약금을 내느라 모아둔 $7500를 모두 사용했지만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웃 중에는 중국에서 이민 온 파룬궁 수련생 부부도 있었습니다.
영적 수행법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眞),선(善),인(忍)에 따를 것을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을 위하는 제가 알던 중국 사회와는 정반대였죠. 이 기공 수련법으로 저는 중국 전통 정신적 가치를 접하게 되었고, 명상 운동을 하며 건강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곧 헌신적으로 수련하게 됐습니다.
가족과 믿음 그리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모든 것이 괜찮아보였습니다.
변곡점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다음 정치운동 타겟으로 겨냥했습니다. 널리 칭송받던 기공 수련은 하룻밤 사이에 중국공산당이 적을 비방할 때 일컫는 ‘위험한 종교 집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수련생들의 육체를 소멸하고,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 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중국공산당 관영 언론의 거짓말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해외 주류언론 보도는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미국이 중국공산당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어린 딸을 비롯한 가족과 안락하게 지내거나 거짓말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2000년 에포크타임스가 창간됐을 때, 저는 애틀란타에서 처음으로 제작팀에 합류했습니다.
첫 발행
초창기 멤버 대부분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였습니다.(이러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중국을 탈출하는 몇 안되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신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죠. 애틀란타 지하실에서 며칠 동안 고군분투하여 14페이지 PDF를 첫 번째 호로 내놓았습니다.
첫 번째 신문을 발행하면서 뼈아픈 상황을 몇 차례 겪었습니다. 저장 버튼의 중요성을 빨리 깨우쳤습니다. 몇 시간동안 공들여 작업한 게 한 순간에 날아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게다가 당시에 우리가 사용한 인쇄기는 컴퓨터 파일에서 직접 판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직접 11인치*17인치(가로*세로) 종이를 인쇄해 두 장씩 이어붙여 신문사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형태를 갖춘 종이 신문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호를 세상에 내놓기 까지 과정을 지금 돌이켜보면 바보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밤을 꼬박 새며 만든 결과물을 두고 지하실에서 나왔을 때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얼굴에 햇빛이 와닿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차분한 결심이 섰습니다. 앞으로 에포크타임스에 어떤 역경이 펼쳐져 있을지라도 진실은 결국 거짓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었죠.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이후의 여정
그때가 22년 전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상황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파산할 뻔했고, 직원은 거의 없었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면 전업으로 일하면서 몰두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에포크타임스에 매진하기 위해 편안한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몇 문장으로 요약되지만 그 사이에 수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있습니다. 9년 동안 계속 이사를 다녔고, 가족들은 한 달 혹은 세 달에 한 번 만났습니다. 이웃들은 제 아내가 싱글맘인 줄 알았고, 어린 딸은 제가 집을 나설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일요일도 휴가도 없이 일했고, 날아오는 청구서를 지불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독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 일을 하는 이유와 수 년 전 다짐했던 결심이 떠올랐습니다. 진실을 발견한 사람에게서는 눈빛과 목소리에서도 그것이 느껴집니다. 따스하고 순수한, 햇살과도 비슷합니다.
이 길을 계속 걷는 이유
오래 전 안락한 삶을 포기한 이유를 돌이켜보면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제가 만약 궁지에 몰린다면 사람들이 저를 위해 싸워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라면서 배운 “모든 인간은 자신을 위한다”는 논리와는 180도 다릅니다. 저조차 그 습관을 완전히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 땅의 자녀들이 마주치지도 않을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나라이고, 그 정신은 매우 특별하며 강력한 힘을 지녔습니다.
독자인 여러분도 그런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매 개인은 진실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위해 기꺼이 싸우는 전사입니다. 에포크타임스를 위해 일하는 단 한 가지 목적은 당신과 같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당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말이죠. 여러분과 같은 미국인을 섬기고, 우리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작은 입자가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과 국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진실과 전통을 담아,
커크 왕
에포크타임스


